# 컨설팅펌에 입사하다
컨설팅펌에 입사하게 되었다. 그나마 스펙이랍시고 가지고 있던 것은 만점에 가까운 토익, 오픽 AL, 컴활 2급, 고학점, 연고대 학사학위 이게 전부였다. 컨설팅펌 RA로 지원해본 것은 두 군데 였다. 하나는 EY한영, 하나는 이름도 기억 안 나는 교내 포털에 올라온 구인 공고에서 본 로컬 펌. 결론은 둘 다 광탈이었다. '리서치'가 정확히 뭔 줄도 몰랐고, 비상경 출신에 학회 경험도 없으니 당연한 일이다.
그렇게 정병 와서 드러누울 차에 친구가 자기 지인이 컨 RA를 하고 있다고 하면서 다리를 놔주었다. 잘 사귄 친구 하나가 취업까지 시켜준다. 그 친구나 나나 컨설팅펌에 대한 지식이라곤 단 한 톨도 없어서 뭐하는 회사인데? 몰라 컨설팅 펌이면 너가 가고싶어하는 그런 류 아냐? 이러며 어깨를 으쓱일 뿐이었다. 어쨌든 동앗줄을 붙잡는 심정으로 이력서를 보냈고 인고의 시간을 견디고(몇 달 정병온 채로 기다림) 연락이 왔다.
겁나 쬐깐한 컨설팅펌이랬는데 절차는 복잡했다. 서류 - 면접 1차 - 면접 2차 무려 3단계였음. 10명도 안 되는 인원이 있는 회사 주제에... 면접 질문은 주로 3가지 위주였다. 'Why 컨', '리서치', '스타트업'. 면접 두 번 동안 질문 60개는 받은 것 같음. 솔직히 인턴+지인추천+소기업이면 안 되는 게 이상하다. 사실 취업 존나게 안 되는 이 세상 자체가 이상하다. 어쨌든 정확히 뭐하는 회사인지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로 입사를 하게 됐다.
# 뭐하는 회사인지 알게 되다
입사하고 몇 가지 의문을 해결하게 되었는데 한 가지는 컨설팅에도 매우 다양한 종류가 있다는 점이다. 나는 '전략컨설팅펌'에 들어가고 싶은데 사실 아직까지도 전략컨설텅이 뭔지 잘 모른다. 언젠가 알게 되면 이야기해보겠다. 내가 본 회사는 우리 회사밖에 없어서 정확히는 모르지만 확실한 건 우리 회사는 전략 컨설팅펌은 아닌 것 같다. 우리 회사는 '스타트업 컨설팅'을 해주는 회사이다. 타겟 고객이 스타트엄이다 보니 컨설턴트로서 갖춰야 하는 역량부터 업무 내용과 검토해야하는 자료까지 빅펌과는 아주 큰 차이가 있어 보였다.
일단, 스타트업이 살아남으려면 자금조달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야한다. 상품개발이 매출과 영업이익으로 돌아올때까지 시차가 있고, 스타트업은 그 시차를 견뎌야만 한다. 그래서 초기 기업들은 이 시차를 정부지원사업을 통해 견딘다. 나는 이 스타트업들이 지원할만한 정부지원사업을 추려주고, 사업 지원을 위한 사업계획서를 써주고, 발표를 위한 IR 자료를 만들어준다.
컨 지원 전에도 들었던 의문인데 사실 어떤 사업의 전문가는 그 기업일텐데, 왜 문제해결을 컨에 맡기지? 이런 의문이 있었다. 이 질문도 스타트업 범위 내에선 해결을 했다. 스타트업 대표들은 자신이 하고 있는 사업을 사업계획서에 잘 담아내는 능력이 거의 없다. 아무리 비즈니스 모델이 좋아도 텍스트와 그래픽으로 잘 표현해내지 못한다면, 결국 자금 조달은 어불성설이다. 투자도 받을 수 없고, 정부지원사업에도 선정되지 못한다면 결국 자생하지 못하게 된다. 나는 그 부분을 도와주는 역할이고 두달째 일하면서 정부지원사업 두 개의 서류평가를 통과시켰다. 발표는 아직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 상태.
이 밖에도 우리 회사는 매출이 잘 나오는 그룹사의 전략기획실도 겸하고 있어서, 그룹사의 경쟁사나 신사업의 국내외 주요기업들에 대한 말그대로 '리서치'를 진행했다. 인문계에 멍청한 감자 상태라서 잘 몰랐는데, 너무 당연하지만 이 업계는 '매출'이 제일 중요하더라. 리서치 할 때도 대딩마인드로 웬 좋아보이는 기업을 찾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비상장이더라도 매출이 잘 나오는 기업들 위주로 찾아야한다. 이밖에도 회사소개서 IR자료 영문번역작업도 해봤다.
정리하자면 1. 고객사 정부지원사업 지원, 2. 기업 리서치, 3. 그룹사 전략기획 업무 이 정도가 되겠다.
#사업계획서를 작성하다
솔직히 처음 입사했을 때 정부지원사업 사업계획서를 작성해보라고 해서 좀 많이 당황했다. IR자료라고는 태어나서 자의로 찾아본 적도, 타의로 보게된 적도 없는데(IR이 뭔지도 몰랐음) 이걸 작성하라니. 지금 생각해보면 우리 회사에 내가 뽑힌 게 당연한 게 아닌 것 같기도 하다(?)
결정적으로 스타트업에 대한 환상도 깨졌다. 나는 스타트업하면 뭐랄까 그 실리콘밸리에 있을법한 소규모의 열정있는 사람들이 모인 그런 작은 회사 이런 걸 상상했었다. 앞서 대표들이 좋은 비즈니스 모델이 있어도 제대로 담을 수 없으면 의미 없다고 말하기도 했지만, 일단 내가 본 대부분의 기업이 좋은 비즈니스 모델이 없다... '좋은 비즈니스 모델이란 뭘까?'에 대한 고민도 해봤는데 확실히 입사 전과는 시야가 좀 달라졌다. 전에는 소비자 입장에서 좋은 상품을 좋은 비즈니스 모델이라고 생각했는데, 철저히 기업의 입장에서 보아야한다. 즉, 돈을 많이 벌 수 있어야 좋은 비즈니스 모델이다. 실제로 비즈니스 모델 캔버스를 검색하면 항목이 여러가지가 나오는데 많은 지원사업을 보면 '비즈니스 모델 = 수익화 모델' 이렇게 취급한다.
일례로 클래스 101과 같은 기업들은 소비자와 강사에게는 굉장히 좋은 플랫폼이지만, 정작 기업 입장에서는 돈 나올 곳이 없어서 고생 중이라고 한다. 이처럼 어떤 특이한 상품 하나를 띡 만들어서 '이거 팔면 대박날 것 같은데?'라고 우리 엄마같은 사람은 매일 말하지만 그런 한 종의 상품만 판매하는 저부가가치 D2C 모델은 모든 사람들이 필요해서 죽을라고 하지 않는 이상 돈을 벌기가 힘든 구조이다. 그렇지만 내가 접한 대부분의 기업이 이런 식이었다.
지금까지 7개 가량의 기업 프로젝트에 관여했는데 소비자 입장에서 파생된 비즈니스 모델이 대부분이었다. 그게 나쁘다는 게 아니다. 이런 부분이 사업계획서에 어필되는 것 역시 매우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돈을 지급하고자 하는 외부인들이 보기에 '이 기업이 자생적으로 대박날 수 있는지'가 사업계획서에 보여야 한다는 게 요점이다. 그래서 내가 하는 일은 기존에 담당 기업이 하고 있는 사업의 비즈니스 모델을 좀 더 거창하게 고도화시키는 일이다.
그렇다고 내멋대로 상상해서 쓰면 안 된다. 그건 브로커나 다름이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대표와 소통하면서 이중에 실현이 가능한 것들과 불가능한 것들을 나누고 대표가 하기로 마음 먹은 부분만 작성해야한다. 실제로 이것과 유사한 느낌의 기업이 있었고, 그 기업은 너무 현재 하고 있는 사업에 비해 야망이 커서... 실현가능한 부분으로 오히려 줄여 역으로 내가 피피티에 고도화 전략을 작성해 제안드린 적도 있었다. 마음에 드셨는지 대부분 수용하셨다. 소통은 내가 아니라 상사들이 하지만 어쨌든 머리를 쥐어짜내야하는 건 나다.
# IR피치덱을 만들다
최근 내가 가장 집중하고 있는 일이다. 한마디로 회사소개서 피피티를 만드는 일이다. 일단 피피티에도 분량이 있고 기재해야되는 내용들이 있어서 한 페이지에 필요한 내용을 효과적으로 압축해서 담아야한다. 비즈니스 모델, 제품 개발 프로세스 이런 부분이 제일 표현하기 힘들었던 것 같다. 사업분야를 그래픽화하고 그래픽끼리의 관계를 표현하는 식으로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었는데, 화살표 방향이라던가, 그래픽의 위치라던가 이런 부분을 결정하는 것이 까다롭다. 예를 들어 사업분야가 크게 4개가 있을 때 그 중 하나를 가장 강조하고 싶은데 결국 엔딩은 4개 사이의 관계를 표현하다보면 하나의 사업분야가 아니라 4개의 사업분야가 전부 중요하게 보여서 결국 뭐하는 기업인지 알 수 없게 되는 식이다.
장표를 만들 때 중요한 것은 역시 숫자를 많이, 크게 보여주는 것이다. 특히 증가율을 보여주는 것이 매우 효과적이다. 피피티를 바라보는 사람들은 결국 수치만 기억에 남는다고 한다더라. 고객사의 요구가 너무 많아지면 피피티가 매우 난잡해지는데 그것을 전부 반영하는 것도 힘들었다. 고객사로부터 오른쪽 정렬같은 쓸데없는 피드백만 한 15번 정도 받은 듯하다. 원래 컨설팅펌 피피티는 최상단에 거버닝 메세지를 넣고 도표나 그래프를 넣어 표현한다고 본 적이 있다. 아무래도 기업의 IR자료는 좀 다른걸까? 여기서도 전략컨과는 다른 부분이 보인다.
# 기업 리서치를 하다
기업 리서치도 몇 번 했었다. 국내기업, 해외기업 전부 해봤는데 거의 대기업보다는 스타트업 위주의 리서치였다. 그래서 오히려 비상장사가 정말 많아서 재무 정보를 찾기 어려웠다. 정해진 형식이 없어서 처음에는 어떻게 해야할지 갈피를 못 잡았는데 지금은 그냥 엑셀에 기업명, 설립연도, 설립자, 현재 경영자, 국가, 3개년치 매출, 투자액, 기업규모, 비즈니스 모델, 성장 과정 이 정도의 정보를 찾아서 기록하고 있다. 피드백을 부탁드렸을 때 상사분들이 잘했다고 하시는 거 보면 이렇게 하는 게 맞는 것 같다. 아마도?
#미래에 대한 고민을 하다
여전히 나는 뭔가 더 해야한다는 부담감에 시달리고 있다. 입사 두달차 인턴생활 말고 한 게 없기 때문이다. 회사에서 장려했던 경영지도사는 너무 시간이 빠듯해서 결국 접수하지 않았다. 지금 재경관리사라도 따야하나 고민중이다. 벌써 인턴 생활이 한 달밖에 남지 않았다. 한 달 이후에는 정규직으로 전환된다는데 사실 인턴만 하고 퇴사하려고 입사전엔 마음을 먹었었다. 정규직 전환형 인턴인 줄 모르고 지원했다 심지어ㅋㅋ 그런데 회사분들이 정말 잘 챙겨주시고 말로만 듣던 신입 갈구기, 혼내기, 꼽주기 이런 건 하나도 없어서 감사해하며 정말 잘 다니고 있다. 퇴사할 때 정말 죄송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퇴사할 거라고 생각을 못하시고 내년 계획도 짜놓으시는 것 같던데.
그렇지만 전략컨과는 다른 걸 어찌하겠나? 단점에 대해서도 써보자면, 내가 만나는 기업들은 주로 스타트업이고 대부분 체계가 없다. 그래서 본인의 비즈니스모델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대표들도 많고 너무 어필할 부분이 적어서 나로선 답답하다. 사업계획서와 회사소개서를 써야하는 내 입장에선 이거가지고 어떻게 어필을 하라는거지? 어느정도까지 내가 창작을 해야되는거지? 왜이렇게 대표가 아무 생각이 없지? 이런 부분은 좀 알아서 해야되는 거 아닌가? 이런 생각들을 매일 한다. 이 때문에 현타 오는 부분이 많고 빅펌을 가면 이런 기업들은 안 봐도 될테니 그런 스트레스는 많이 줄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거의 오버타임 및 야근을 밥먹듯이 한다. 유연근무제도 없다. 9시 출근 버스는 재앙이다. 야근은 어느 정도 각오한 부분도 있고 내가 일을 빨리 끝내지 못해서 그런 부분도 있다. 엄청난 불만은 아니지만 야근수당따윈 존재하지도 않기 때문에 최저시급이나 다름없는 월급을 보면 킹받긴 하다. 그리고 너무 소기업이라 화장실 청소, 음식물 쓰레기 청소 이런거 다 우리가 해야하는 게 정말 충격적인 포인트다. 나는 내가 이런 회사에 다닐거라곤 상상을 못했다... 선임들이 해주시기에 내게는 안 시키지만 좌불안석이 따로 없고, 스트레스 받아서 점심도 절대 음쓰 안 나오는 음식만 먹는다.
4월말쯤되면 아마 내가 개입한 5건의 프로젝트에 대한 결과가 나올텐데 두 개 이상만 성공적으로 마친다면 소원이 없을 것 같다. 성과를 내야 시원하게 퇴사를 할텐데 말이다. 일단 하나는 서류까지만 통과되고 떨어져서 4건 남았다. 파이팅.
'컨설팅' 카테고리의 다른 글
| 27살, 경영 노베 문사철의 컨설팅 도전기 (0) | 2026.01.19 |
|---|